외롭지 않고 외로워한다. 시를 읽지 않는 지은에게 시를 읽은 친구가 시집을 소개시켜주며 ¹‘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시집을 사서 주지 않았다. 지은은 친구가 보여준 그의 시를 소리 내어 읽고 시집의 가격을 알아본다. 칠천 원에서 팔천 원이다.


“알았어. 한 권 살게.”


한 권 사겠지만 그 한 권을 언제 살진 드러내지 않았다. 대형 서점이 보이는 건물을 쳐다보며, 온라인 서점 광고를 볼 때, 북 카페에 꽂힌 시집을 보고 사야지, 사야지 생각만 하고 어물쩍 밤이 오는 것이었다. 구운 오징어 먹고 독하게 한 권 사러 나가야겠다. 보풀이 오른 목도리를 두르고 일어섰다. 원룸을 반으로 갈라 방이 두 개인 것 같은 집에 부엌이 딸렸다. 부엌치곤 협소한데 방으로 쳐야할지 고민을 하고 친구가 소개한 시집의 마음을 울리던 시 제목을 읊었다.


“¹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눈물을 환영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슬퍼서 우는 눈물, 좋아서 우는 눈물. 눈물은 슬픈 걸까 슬퍼지는 걸까, 슬픈 것을 사람은 꺼려할까 꺼려한다면 그는 행복한 걸까. 지은은 웃고 있나 안 웃을 때가 많나. 일부러 안 웃을 때 슬픔이 치미는 것은 살점이 스러지는 신호탄일까.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자랑이 될 수 있다.”


숨죽여 슬퍼한 지난밤이 자랑이 될 수 있다. 흘린 눈물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메이커 로고가 꿰매진 옷을 입지 않아도 시급을 받지 않는 일을 하지 않아도 자랑이 될 수 있다. 자랑이 될 것이다. 밤은 그러라고 있다. 낮은 지은이 깨어먹은 주방용품을 사라고 있다. 손전등을 켜지 않아도 눈두덩을 끔뻑이게, 달이 빛나는 것이다.


“팔천 원입니다.”


서점 계산대에 선 직원이 할 말을 연기해보았다. 지은의 시야에 다양한 출판사의 시집들이 즐비해있다. 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먹고 싶어지는 시집이다. 냠냠.


“미안하지만 부탁드릴게요.”


처음 산 시집에게 사죄했다. 시집이 살아났으면 하고 바란다. 팔천 원에 말상대를 사는 거니 팔천 원이면 너무 적고 좋은 가격이었다.


“이름을 지어줄게요. 당신, 당신. 당신이 내 집에 가면 당신이에요. 사별할 때 당신, 웃을 때도 당신. 난 당신이 없었는데 당신이 나타나서 좋아요.”


시집을 꺼낸 손등이 떨린다. 볼도 함께 떨었다. 눈물이 떨리고 죽어간다. 엄마의 가방을 잡은 어떤 아이가 ‘언니. 울어요?’ 묻고 갔다.


“응, 언니 울어.”


눈물은 슬픈 걸까. 슬퍼져서 우는 걸까. 슬픔이 우는 걸까. 기뻐서 우는 건 절대 아닌데 지은은 울면서 시집을 사가지고 온다. 아무나 그립고 매달리는 밤. 종이봉투 안에 들은 시집을 당신이라고 부르며 만날 연인이 없다고 운다. 공원 벤치에 손수건을 깔고 앉았다. 벤치는 그네처럼 동요했고 지은도 흔들렸다.


간밤에 내린 비가 남아서 앉은 손수건이 찼고 바지가 젖었다. 당신을 말끔히 열어보며 친구 지은이를 돌이킨다. 동명이인이지만 성격은 달랐다. 지은아, 하면 지은이는 ‘누구야’, 지은은 ‘불렀어요?’ 당신을 추천할 때 지은이는 다음엔 멀리 만나자고 했다. 그런데 네가 그날 밤 자살을 했을까.


“부산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인데요. 사망하신 환자분 마지막 통화내역이 지은 씨에요. 어떤 관계이신가요?”

“지은이가 죽었나요?”


지은은 지은이가 읽어보라고 소개한 시집 읽을 염을 피하고 지냈다. 시간은 자유롭고 할 일은 없었지만 그 시집에 지은이가 하고 싶던 유언이 들어 있을까봐 겁이 났다.


“지은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며칠을 지은의 이름을 먹어서 지은이를 불러도 대답이 없다. 눈물은 슬프다. 매우, 매우 슬퍼져온다. 슬픔이 자랑이 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렸다. 밤이 세찬 겨울바람을 들이몰고 지은에게 불어 닥쳤다. 그녀는 가능한 한 슬피 울었다. 눈물이 맞부는 풍편에 날려 병열이 흐무러진다. 밤빛이 피었다.


“와줄 사람도 없는데 열난다.”


밤공기를 마시며 기우는 그림자를 밟았다. 그림자는 지은을 쫓아 현관으로 간다. 신발을 벗어버리고 실수로 당신을 종이봉투에서 꺼내놓았다. 지은이 지은이와 다니던 고등학교는 개똥벌레 가사를 따라 부르게 하거나 외워 쓰도록 시켰었다. 자살한 지은이는 딴 애들처럼 고집을 꺾지 않아서 지은이 지은의 몫까지 불렀고 감기에 걸린 날에는 한 장을 더 대필했다. 둘은 필체가 이름만큼 닮아있었다. 모음은 비듬히 흘려 쓰고 문장의 첫 자는 가다듬었다.


“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 마라.”


지은은 가사를 프린트한 종이가 휘날리지 않게 선풍기를 켠 교실에서 지은이 베껴 쓰는 글자를 고정해주고 불러주었다.


“나를 위해 한번만.”

“노래를 해주렴.”


혼탁해진 지은의 목소리가 다음 문구를 읽는다. 연약한 기관지를 가지고 잉태된 권 지은. 그녀들의 시선이 무르녹는다. 저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경험해본 애. 권 지은의 뺨을 다소곳이 문질렀다. 주근깨가 찬 뺨이 지은을 죄여 들였다. 회전하는 선풍기가 권 지은의 목덜미에 축적된 머리카락을 으끄러트린다. 입술의 정취가 콧방울을 스쳤다. 지은의 하복에 담배향이 젖어있었다.


“흡연은 건강을 해친대.”

“펴볼래?”

“보기만 할게.”

“냄새 역하면 창문 열어.”


성 지은은 열아홉 교복을 입은 성년이었다. 선생은 학교에 학생 한 명 없는 셈 쳤다. 제가 여고에 투명인간이 된 까닭은 동명을 쓰는 지은에게 키스를 위한 액땜이겠지, 그녀는 음전이 웃었다.


“울어?”

“연기가 매워서.”


¹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시집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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