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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

습작


세계는 태양이 돋아나지 않는 삶에서 금방 익숙해졌다. 낮과 밤에서 빛만을 앗았는데 세상은 햇살이 눈부시던 영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었다.
시간을 알리는 시계에서 오전이 지워지고, 태양이 물러간 자리를 불빛이 대신해 밤새 전국을 밝혔다. 하루는 스물여섯 시간이 되었다. 새로운 체계가 우리 삶에 정착돼갈 동안 밤을 가리키는 뜻이 달라졌다. 햇빛이 불이 되었으므로 재력 있는 자가 빛을 얻고 가난한 자는 빚을 뽑아낸다.
덧없는 밤의 계절. 배불리 웃을 사람만 웃고 잔뜩 울어낼 사람은 Z구역에 흩어져 구원자를 찾는다. 구원자는 어지간히 돈 있고 힘 있는 중년의 재력가를 말하는데 그들이 가난한 청년에게 빛을 후원했다.
빛, 빚.
나는 저것이 핏빛으로 들려서 한동안 구원자를 찾으러 다니지 않았다. 객쩍은 혈기였다. 물 사마실 동전이 죄 빠지고 나서야 형이 다려놓은 재킷을 걸치고 밖에 나왔다.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근심걱정을 잊게 해주는 귀한 담배 한 갑도 최근 값이 오른 돼지고기와 더불어 인상되는 추세였다.
Y구역 외각 벤치에 앉아 무릎을 세운다. 끼니를 거른 뱃속이 우렁차게 울린다. 공원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어떻게 해야 오늘을 무사히 살아 넘길 수 있을까. 인간의 몸은 불편하다. 먹고 자고 싸고 입고 벗고 심장은 하나에, 제어가 안 되는 감정을 가지고 육체에 명령을 하달한다.
왜?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그러고 살아서. 상대방의 말을 연거푸 따라하던 장난꾸러기처럼 이미 실패한 네 생을 따라 산다. 그러니까 탈이 나지. 세계는 온통 실패자들 세상인 걸.
"왜 우냐."
"누구세요."
"나? 지나가던 아저씨."
어지러이 번진 시야를 헤집고 거무스름한 형체가 가로등 아래서 아른거린다. 목이 메어 푸석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아저씨 구원자세요?”
“으응. 별 모양 배지 보이지? 어때, 구원해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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