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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온다 2

2017 09

갈래요. 갈래오. 갈릴래요. 내 아름다운 인어. 때로는 여자 같고 남자 같기도 한 인어. 인어의 머리색은 물결 빛이었다. 갈래요. 갈래오. 갈릴래요. 너의 사랑은 갈래요, 심장은 갈래오, 네 고향은 갈릴래요. 사랑과 심장과 인어의 고향. 나는 헤엄을 못 친다. 물로 된 몸은 뜨지 않고 물을 덮은 피부는 가라앉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너를 동경하고 존경하고 사랑하여 영원을 사는가 보구나. 사랑, 사랑의 결핍을 애정이라 한다지.
네 영혼이 멎어가는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심장 박동이 멈추면 끊기는 숨은 심장이 끊어진 적 없는 네겐 두려움이었을 테고 내가 죽는 것도 싫었을 테니 인어는 인간들이 하자는 대로 했다. 나쁜 말로 미련 맞고 좋은 말로 희생. 미련 맞게 희생한 너를 찾아 수년을 돌아다녔다. 인간이 심장만 도려내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고 던져버린 인어의 시체를 수백 년, 수천 년 찾으러 기웃거렸다. 드디어 너를 발견했을 땐 소년이 데리고 있었다. 널 데려가 며칠 보살핀 듯 보였다. 소년의 눈동자는 너 이외엔 비추고 있지 않았다.
저게 네 심장이면 좋았겠다.
소년이 말하는 것을 엿들었다. 어떤 연인이 그리고 간 꽃답게 나동그라진 하트를 보고 소년이 한 말이었다. 기억났다. 나는 네가 다리를 가진 게 기뻐서 나뭇가지를 꺾어 모래사장에 너만 한 하트를 그렸다. 넌 히― 웃었다.
히.
소년은 너를 안고 돛단배처럼 바다에 덤벼들었다. 파도가 소년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히, 바보다. 너를 보았지만 소년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었다. 왜냐면 소년의 귓등이 나보다 빨갰다. 귀가 붉은 홍조를 타고 내린다. 나는 검은 점만 빨갛고 점 귀의 삼면이 덜 빨갛다.
덜, 덜.
소년의 심장이 떤다. 바다는 차갑게 얼어붙는다. 올해도 바다가 언다. 끝없는 바다에 끝없는 얼음. 살얼음을 깨부수며 소년은 바다에 보이는 하늘을 깊숙이 바라본다.
히.
소년이 히― 웃었다. 이루지 못할 꿈을 꾸었던가. 아득히 이루었는가. 그 꿈은 이제 없다. 나는 없어진 꿈을 잊었다. 이제 없는 꿈을, 그 꿈은. 물에서 거품으로 공중 분해될 것이다. 그네는 발돋움을 하면 더 높이 덜 낮게 올라간다. 물속은 발버둥 칠수록 야심을 낳았고 수가 줄어들면 사방의 거품이 소년의 입술을 끌어 내렸다.
좋았겠다.
소년은 바닷물에 잠겨 들어간다. 좋았겠다, 부득이하게 꼬여든 혀가. 꼬르륵, 짤랑. 히― 웃었고 사라진 소년은 침묵을 지켰다, 아무도 듣지 않는 맹세 같은 것을.
세이렌.
세이렌.
세이렌.
밤이 깊었다. 허리끈을 조이고 암벽 귀퉁이에 섰다. 암벽 아래 찌를 듯이 가파른 바다가 덤비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고열을 동반한 악몽이 나를 깨웠다. 달빛이 바다에 반사되어 공존하는 달이 둘. 바다에서 만들어진 달의 둥근 모형을 삽으로 파면 금빛 모래가 나올까.
갈래요. 갈래오. 갈릴래요.
갈래요. 갈래오. 갈릴래요.
발꿈치를 치고 올라 한 마리 나비처럼 바다에 쏘아 내릴 때 노랫소리가 들렸다. 나의 별명은 세이렌이었다. 사― 우는 사람이 가르쳐주었다. 사― 우는 사람은 사해를 여행하고 사해를 기록하고 사해의 물을 유리병에 담아 와서 자랑했다. 사해 물이에요 사, 사해 물이에요 사, 백퍼센트 사해 물입니다. 나는 그가 받아온 사해 물을 샀다. 사― 우는 사람은 사해를 팔고 사해를 여행하고 기록하고 사해의 물을 담아오려 뱃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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