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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가 죽은 아침

무료 공개 2017 02 (2018 07 수정)

새삼 빈자리가 거대하게 나를 감금하고 걸터앉아 발뒤꿈치를 포개고 있었다. 세심하지 않구나, 넌. 배려심도 있지 않구나, 넌. 사랑은 받아도 없는 듯 펑 터져버려서 죽을 때 짓는 미소도 앞이 가렸다. 성가시다. 펑 터져서 눈물은 쓸리고 피가 깃털이 달린 것처럼 난다. 날아서 네 피부에 묻는다. 새삼 나를 지키는 게 없다는 걸 체감한 어제였다.

향연 구십구. 외할머니는 유골만을 남겼다. 백 살은 못 사셨네. 죽어야만 아는 사후세계는 사고 없이 무탈한가요. 새삼 목숨 부지 오래하신 할머니가 우는 빌어먹을 것들을 지척에 두고 달려 나가는 허연 두발이 보이다가 말기도 하고 하루가 지났다. 오늘이었다.

세심하지 않고 배려심도 있지 않은 네가 귀국하는 날. 새벽에 온댔다. 아침 여섯시 기상 알람에 일어나 본 건 어항 밖을 나와 팔딱 뛰지를 않는 금붕어의 사체였다. 살리기 전에 변기통에 버리기 전에 죽어있었다. 너는 어쩜 나를 잘 안다. 살고자 주둥이를 벌름거리면 죽기도 전에 내가 처리할 줄을.



첫 고백과 어항과 금어와 달
햇살을, 맥 빠지게 너를 담아냈던 첫 햇살을 나만 받아내지 못했다. 네가 가려주어서. 나는 부족한 사람으로 이해 받지 못하는 사랑을 했었다. 고백을 하는 이날에도 여과 없이 꽁꽁 여몄던 사랑이 네게는 이해 받던 십 분의 시간.

“번들거리고 뜨끈하고 새하얀 것이 손바닥에 늘어나는 연기, 입김이야. 불어볼래? 입김.”
“입김은 말하면서 나오잖아.”
“쉬잇. 입술 말아서 부는 것만! 입김하고 금붕어 딱 두 개만 할 수 있게.”
“금붕어는 왜.”
“물 있는 어항 안에 살고 꺼낼 수 있고 또… 너 닮았어. 금붕어.”
“나 머리 안 좋아 보이니?”
“아니. 그렇다고. 그냥 하는 말.”
“난 그냥 한 말 아니었는데.”
“실감 안 나. 확 치고 들어오기 있기냐. 어?”

입김이 진다. 빨간 입김이다. 쉬었다 헤뜨러지는 뜨끈하고 하얗고 너의 끝마디에 달아나는 숨. 문 닫힌 가게 전광판이 산소와 전기장을 덥힌다. 건너, 건너, 건넛집에 네가 사는 아파트. 네가 좋아하는 아파트에 건너, 건너 사는 너.

“거짓말은 하고 있어서 무서운 거야. 거짓말 안 해. 그러니까 잘 들어. 너 사랑해. 나랑 사귀자.”
“고백은 내가 했는데.”
“알아. 근데 나도 고백 좀 해보게.”

첫 고백은 성공적이었다. 너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일도 어렵지만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게 하고 사랑하게 되는 일은 영혼을 보는 일보다 까마득하고 멀다. 이 처음 고백에 넌 날 사랑한다 했고 별똥별만큼 체증이 있는 행성이 되었다. 금붕어 살까? 금붕어 소리를 오늘따라 길게 내었다. 하도 빈번하게 내서 금붕어 소리가 내 입인지 네 입에선지 뭉뚝하고 걸쭉해졌다. 묽은 죽 발성이었다. 팡팡 혀뿌리에 발그레 떨어져오는.

“나 한 마리, 너 한 마리 사자.”

금붕어 두 마리. 첩첩산중 시골에 제일가는 달동네는 내 고향이기도 한데 ‘달의 어항’이라는 고기 음식점이 있었다. 삼겹살을 팔고 갈비를 굽고 소고기도 즉석으로 팔았다. 음식점 아줌마는 관절염에 걸린 꿋꿋한 덩치 큰 개를 기르고 예뻐했다. 개가 죽으면 자신도 가버릴 거라고 협박인 듯 협박 아닌 푸념을 하는 것을 들었었다.

어른들에겐 박한 여자였지만 어린아이는 금어처럼 대했다. 금어는 아줌마가 기르던 개 이름이다. 금어. 바다도 없는데 어(魚)가 붙어요? 그 어가 아냐. 금어가 죽고 나서도 아줌만 금어를 따라 가지 않고 그 어가 아닌 다른 어를 가르쳐주지 않았고 어항을 큰 걸 장만해왔다. 금어는 내가 봐도 착하고 지를 때려도 사람을 암만 잘 따르는 애였지만 한 번 죽음의 고사를 치르게 되었을 때 순한 금어는 아줌마를 물었다. 세게, 피가 났다.


“아파요?”
“안 아파.”
“안 아픈 상처는 없다고 책에선 그랬는데….”
“책에 나오지 않는 아픔도 있어, 아가.”

저런 것도 살려고 그러지. 금어는 아줌마에게 상처를 내고 아파하며 갔다. 튼튼한 유리로 된 어항을 가게 식탁보에 옮기고 금붕어가 든 비닐을 풀었다. 금붕어는 아줌마의 생애 마지막 어가 되었다. 달이 뜨는 달동네에 달의 어항.

“아줌마 이 어항에는 달이 떠요?”
“뜨지, 내 보여줄까?”
“응! 보여주세요. 어항 안에 달.”
“저녁이 되면 어항엔 달도 살고 금붕어도 살아. 보고 싶으면 도와라, 아가. 이거 들고 나가야지. 모서리 잡고 하나, 둘, 셋. 하면 드는 거다. 하나.”


파도가

“둘.”

내게로 온다.

“셋.”

출렁, 출렁이면서. 어항 건너, 건너에 음식점 옆. 어항을 내렸다. 달이 있다. 그 내면은 달이 있다. 금어가 있다. 나의 첫 어항은 탄내와 살코기 냄새가 뒤숭숭한 아줌마의 집, 생계 수단인 가게 앞에서. 사랑한다. 모든 세월을 말할 수 있게 됐다. 금어처럼은 아니지만 미루지 않고 자랐다. 나는 열여덟을 맞았고 그녀는 쉰여덟에 눈이 멀었다. 사랑한다.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용기는 없었다.

달의 어항. 내 어항과 금어와 달동네가 있는 곳. 내 달과 금어는 하늘로 숨었지만 ‘달의 어항’ 물고기 집은 있었다. 아줌마가 없는 곳이다.
너는 달의 어항으로 들어간다. 나를 데리고 간다. 나 한 마리, 너 한 마리 사려고 들어간다. 금어가 짖었다.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금붕어가 있다. 주황색 한 마리, 청색 한 마리. 푸르스레한 어항에서 일순간 초승달을 보았다. 살지 못해 죽는 사람들,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 나의 입김 속에 머문다.

“이제는 금어 따라갈 수 있겠네.”
“죽는 게 기쁘다고.”
“안 기뻐?”
“책엔 안 그렇던데요.”
“책은 안 알려줘. 조금씩 간만 보지.”

금붕어가 죽은 아침. 아줌마가 돌아가셨다. 안락사였다. 안락사한 개를 따라 그녀도 죽었다. 내가 있고 누군가는 스스로 사라지고 그리고 금붕어가 있다. 모든 사랑하는 순간과 출렁, 출렁 출항하는 뱃머리. 사랑한다. 오늘에야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랑하는 한 사람의 순간은 부스러지고 저 자리에 대신 네가 있다.

“아줌마.”
“으응.”
“잘 자요. 달동네 가면 전화하고. 목소리라도 듣게.”
“잘 가. 운전 조심히 하고. 앞뒤 잘 살피고. 가는 길에 모르는 번호 떠도 전화는 받고. 목소리라도 들어보게.”
“응. …응. 그럴게.”

간다고 가는 것을 주무시라고 눈을 뜨면 내가 곁에 붙어있기라도 할 것처럼 다독였다.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운전 조심히 하고 앞뒤 잘 살폈고 집에 들어가던 길이었는데 모르는 번호만 뜨지 않는다. 기다리고 있을게, 목소리라도 듣게. 그땐 사랑한다 말할게요. 해보니까 마음의 준비랄 것도 없더라. 사랑해.



금붕어가 헤엄친다. 반구 비늘을 두른 채 나를 앞질러 다시 돌아온다. 미적거리는 지느러미로 넌 몇 미터를 지나 걸어갈 수 있었을까. 새로 사온 금붕어 두 마리가 한 아이를 뜯어먹었다. 얼굴에서 몸통까지 이어진 잔뼈는 물 위의 섬이 되고 내가 보는 금붕어는 수질이 흐려져 간다. 너와의 잠자리는 슬픔이 없었다. 멈추라면 멈추었고 계속하자고 그러면 연신 키스를 해왔다. 너는 내 한 부근의 손가락만 긁어내리며 나의 모든 표정이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사회생활하려면 그러잖아. 웃고 다니고 티내지 말고 뭐든 해보겠다고 하고. 보고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하라고.”

바로 너의 뒤에서 금붕어가 나를 비웃듯 쳐다보고 있었다. 꿈이 아니야 너는. 열아홉의 성숙한 꿈도 아니야 나는. 그저 널 사랑하고 있다. 편견을 의식해서는 아니었다. 비밀로 부친 연애는 우리가 어항을 물갈이하지 않고자한 연애 방식이다. 밝히면 안 돼, 너와 나의 사랑은. 엄벙덤벙 끊겨도 안 돼, 나와 너의 사랑은, 매화다. 우린 미친년이 아니다.

“선 봐라. 내 친구 아들이 있는데 직업도 좋고 인성도 괜찮더라. 네 나이 삼십이 되어가잖니. 예방 해놔야지. 만나봐.”
“결혼 안 한다고 했잖아.”
“네 외할머니 머지않아 돌아가신다. 남편감이라도 보여야지. 사람 앞길은 모르는 거야.”
“됐어. 만나는 사람 있어.”

외할머니는 그것이 걱정이셨다. 달동네에 살았으면서 없이 살아온 게 수치라고 달을 꼿꼿이 보지 못하는 사람은 외할머니가 오직이었다.

“누군데?”
“금붕어.”

이모네 청색 금붕어가

“저거?”

영정사진으로 나를 거머삼키려 한다. 비교하지 마, 저거하고. 나와 너의 사랑은 저런 것이 아니다. 녹녹한 주황이다. 수챗물이 끌려올라와 입김으로 쏟아진다. 쓰다. 쓰고 비린 물이 흘려들어와 심장까지 냉증을 발열하며 달린다. 손발이 차다. 냉기에 잘 든다는 약을 먹어도 여전히 차기만 했다. 약장수는 약사도 아닌 주제에 비오는 날 우산을 받들고 두 번째 약을 쥐어주었다.

“이게 그렇게 좋아. 나아질 거야.”
“안 좋던데요.”
“그렇담 아가씬 마음이 차서 그려.”
“아주머니는 알아요?”
“알지. 책에 나오거든.”

목이 허전하지 않게 찬바람마저 들어올 새 없이 둘러 여분이 남는 수제 목도리가 허옇게 보이다가 말기도 하고

“스물일곱 봉지만 줘보세요.”
“사가게?”
“네.”
“적당하겠구먼.”

하루가 지났다. 십이월 스물여덟째 저녁이었다. 외할머니가 네 시 사십삼 분에 금생을 떴다는 부고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로 아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잘 지내냐.”

아빠였다. 외가에 죽음을 친가에서 알리는 것이 매섭다. 도망갔잖아, 당신. 곪아 죽는 엄마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차고 달동네에 못 살겠다며 달이 안 보이는 데로 떠났잖아, 당신.

“장모님이 용서해주셨다. 너도 그만 용서해.”

사랑을 증오하는 일에 이타적 관용이 따라붙는다. 부모를 죽인 원수도 사랑하라. 사랑해 마지않아라. 근데요, 하나님. 당신은 원수를 지옥에 보낼 수가 있잖아. 난 그럴 수가 없네요.

“정신 못 차렸죠?”

당신이 가장 잘 알면서

“용서 못해요.”

세상에서 가장 들어주기 싫은 부탁을 한다. 하나님 제발 계시다면 저 인간을 사랑하지 않게 하세요. 무디어지는 것과 남을 용서하는 건 같을 수 없다. 상처 자국이 아물었다 뿐 매가 내린 붉은 붓기는 회고할 때마다 되살아난다. 강자는 약자를 보고 희열을 느끼고 약자의 바깥에는 강자의 입김이 분다. 입술은 나의 것인데 어디서나 분다. 참을 수 없었다.



점심을 먹고 두둑이 오른 배에 힘을 주며 폐교한 학교 운동장을 산책 삼아 뛰었다. 어제 혼자 횟집 가서 활어를 먹었어, 말문을 닫은 내게 그리고 금붕어가 있었다고 생뚱맞은 말을 했다.

“난 웃는 게 예뻐?”
“우는 것도 예뻐.”
“울라고 하지 않아?”
“표정은 드러내라고 있는 거니까, 단속하면 안 돼. 막히면 죽거나 죽이거나 결국은 죽음이 오거든.”

함께 가겠다는 너를 만류하고 검은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조화가 붙은 머리끈을 떼어내고 엉거주춤 매트리스에 올라온 네가 내 머리카락을 지적하며 앉았다.

“여기 잔머리 나왔다.”
“핀은 어디서 났어?”
“네가 자면서 두고 갔잖아. 항상.”
“…그랬나?”
“이리와 봐. 다시 묶어줄게.”
“그거 네가 차고 다니던 건데 빌려줘도 되는 거야?”
“응. 너 나 사랑하잖아. 사랑하면 되는 거야.”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은?”
“미워해. 용서는 무리해서 하지 마. 내가 그랬지? 표정은 보이라고 있는 거니까. 화내고 싶으면 화내고 때릴 거면 뼈가 부러지든 때려. 막 욕해. 막 해도 돼. 널 힘들게 한 사람이니까.”
“전쟁 나갈 준비하는 것 같아.”

죽은 망령을 배웅하는 장례라는 것. 불교는 목탁을 두드리고 기독교는 찬송가를 부른다. 나의 종교는 너다. 선선한 매트리스에 햇볕이 묻어나고 너의 향이 너울댄다.

“이기고 와.”
“그럴게.”

산들바람이 오늘도 불어온다. 남쪽에서 동쪽으로, 동쪽에서 나에게로. 나에게서 너에게로, 너에게서 나에게로 선들선들 분다. 장례식장엔 조문객이 많았다. 운전을 하고 가는 동안 왠지 조문객들 사이에도 하객이 끼어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축하하는 손님. 죽음을 축하하는 또는 기뻐하는 사람. 아빠, 그는 아빠인가. 죽음에 눈이 먼 자가 지옥에 갈까 두려워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

“부탁드립니다.”

엄마가 죽고 나는 한철 아줌마 손때에 정을 키웠다. 간혹 아줌마를 엄마라 부르기도 하고 ‘아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아마 그녀는 나의 친엄마였다. 성교육 시간에 남녀의 섹스에 대해 배우고 나왔지만 아줌마가 관계를 가졌다는 헛짓거리는 빌어보고 싶지도 않았고 형편없는 자식이 내 부모라는 게 끔찍했다. 매일 밤 이를 갈고 무언가를 내리갈겨버려도 안 잊어지던 남자.

“왔냐.”

화내고 싶으면 화내고.

“야 이 개새끼야.”

막 욕해. 해도 돼. 날 힘들게 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금붕어가 있다
여자를 물건인줄 아는 사람. 물건 이하에 취급을 하는. 남자에게 대주면 그만이라고 해대는 새끼. 죽었으면 좋겠다, 제발. ‘하나님 저의 말을 듣고 계시다면 저 인간을 좀 죽여주세요. 사고사도 좋아요. 술을 마시고 떨어지는 추락사. 자살도 좋아요. 아빠가 자살할 명목은 없지만 난데없이 죄책감이 끼쳤다고 해주세요. 그리고 그가 죽은 그림자에는 금붕어가 있었다고 기사 제목 한 줄 써주면 돼요. 사람들은 아무도 내가 그를 가족으로서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을 거예요.’

금붕어는 나의 사랑이었다. 자꾸 사랑을 토해 사랑을 그렸다. 사가 죽을 사(死) 같았다. 절식이 폐를 쥐었다. ‘숨을 쉬게 해주세요. 이대로 멎어도 좋을 만큼 들숨 날숨을 나르게 해주세요. 해달라고만 해서 죄송한데 들어는 봐줘요. 하나님, 당신.’ 아픈 엄마가 믿는 신은 하나님이 유일했다. 새벽 기도회, 수요예배, 주일예배 놓치지 않고 가서 천국을 가게 해주시라고 엄마는 빌었다.

“천국이 뭔 상관인데.”

어스름한 밤. 끝까지 남아 성전 구석에 무릎을 꿇은 엄마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빠가 없는 동네에 가면 되지. 거기가 천국이야. 이울고 검어진 나의 엄마는 윤기가 없었다. 내 오열을 듣고 사모님이 쫓아와 날 업어가기까지 엄마를 꽉 노려보고 때렸다.

“뭔데! 내가 왜 엄마 때문에 아빠 눈치를 봐야하는데! 말해봐, 어? 내가 왜 아빠한테 맞고 있어야 해? 하나님이 우릴 도와줘? 먹어 살려?”

교회 식구조차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 가정이다. 하물며 나를 교회 문밖으로 안고 나갔던 목사님의 아내도 아빠를 안다. 알지만 침묵한다.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교묘한 거짓말로.

“속이려면 제대로 속여요. 나처럼은 하란 말이야.”

나 혼자 미치지 않았다. 나 혼자만 미치지 않는다. 맨 정신으로 미쳐가는 교인들을 상대했다. 엄마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미친 사람이 홀로 미친 아이 취급하면 깔깔 희읍하며 언덕에 솟은 교회를 오랫동안 내려가 달렸다. 병이 전염되는 감각. 이건 무슨 병이기에 나의 숨이 되어갈까요. 하나님께 물었다.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귀를 잃은 척을 하고 앞이 안 보이게 후방으로 달려 나갔다. 부딪히는 행인이 없었다. 철저한 어둠 안에 혼자였고 돌부리에 걸리지도 않았다. 능숙하게 걷는다. 한 번은 버르적거리고 싶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주행을 했다.

“날 죽여주세요. 죽이진 않고 살려주세요.”

소리 내어 내게 기도한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게 하라고 신도 뭣도 아닌 내가 내일을 살게 하려고, 나의 사랑에 별명을 붙였다.

“금붕어도 있다.”

그리고 금붕어가 있다.



계피향이 났다. 모기가 빽빽이 알을 낳는 여름의 달동네는 계피가 모기를 퇴치하는데 제격이라고 해서 저도 나도 계피를 팔았고 그것을 샀다. 바보가 따로 없었다. 멍, 금어가 짖고 길고양이가 금어에게 시비를 건다. 아줌마를 짝사랑하던 아저씨가 분양받아 기르기 시작한 개 이름이 금어였다. 아줌만 어찌 되었든 아저씨를 피해 다녔다. 제 감정만 고집한다고, 다 늙은이는 내 눈길 밖이라며 윙크했다. 교인들은 그녀가 불교를 믿는다고 사사건건 비난했지만 나는 아마가 좋았다.

“불교를 믿는 게 아냐. 쟤들이 꼬아서 딴 신앙으로 갈아탄 거지. 아가야, 언덕 위에 세워진 교회는 얼씬도 하지 마라. 걔네가 악덕이야.”
“맞아요.”
“아가도 동의하는구나?”
“응! 걔네가 악덕이에요.”

쨍한 분홍 반팔티를 입고 앞다리 짧은 의자에 앉은 그녀는 죄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악덕을 악덕이라 인정하고 어린애는 그러면 안 된다 혼내 치지도 않고 밑동에 엎드린 매미 얘기를 했다. 매미는 여름에만 몸뚱이가 붙어있는데 강렬하게 울어 싸 다들 매미가 울면 여름이 왔구나― 한다고.

“더우면 무조건 여름 아니에요?”
“것도 여름이지만 대상이 필요한 거지. 봄에는 벚꽃, 여름은 매미.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래잖아. 아가는 책 많이 읽니?”
“아뇨. 아줌만요?”
“난 안 읽어.”

멜론 맛 아이스크림을 얻어먹고 이번엔 ‘달의 어항’에 있는 금붕어를 보러갔다. 청색 금붕어가 없는 맑은 물의 한가운데였다. 먹이를 주면 막 주위에 모여든다고 밥을 줘보랬다. 길쭉하고 똥그란 통을 흔들자 금붕어들 점심이 나왔고 내가 지은 사랑의 별명이 수면 겉으로 드러났다.

“아줌마. 사랑에도 밥 차려주고 충전할 수 있어요?”
“가능하지. 충전기만 있다면. 충전해줄까? 아가.”

아줌마의 눈망울은 윤기가 흘렀다. 달의 어항이 얼싸안은 여름의 긴 기척이 머리띠 쓴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금붕어가 살아있는 저녁, 경사가 비탈진 계단을 한 걸음 옮긴다. 아마는 멀리 콩만 한 점토가 되어 살이 늘어진 팔뚝으로 사이좋게 인사를 해왔다. 노을이 슬며시 꺼져간다.

달칵.

빛이 방안을 밝힐 적에 엄마는 가래침을 뱉었고 아빠는 술잔을 따라 담뱃불로 지진 바닥에 내려놓고 있었다. 이리 와봐라. 오늘은 운수가 좋았다. 하루가 곧 넘어갈 것 같았는데 그는 물집이 잡힌 살코기 같은 것을 뻗어 나를 더듬는다. 엄만 기침을 멈추지 않았고 내 전방엔 괴물이 있었다.

“…….”

‘하나님 듣고 계시다면 여기 집안을 죽여주세요. 엄마든 괴물이든 끌고 가주세요.’ 홈이 파인 밑바닥을 휘두르는데 빈 술병이 손에 들린다. 살고 싶다. 그러면 경찰만은 날 용서해주지 않을까. 한꺼번에 술잔이 무너졌다. 유리 파편이 튀었다.


엄마든 괴물이든 끌고 가주세요, 그래선지 몰라도 일주일 지나서 엄마는 천국으로 귀환했다. 확실히 천국으로 인도되었는지는 모른다. 여자의 감이었다.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 아빠, 그는 아빠였다. 때릴 여자가 줄어들었으니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는 남편의 표정을 연기한다.

“아내를 잘 부탁드립니다.”

찬송가가 식장에 퍼진다. 언덕 위 교회에서 온 교인들이었다. 아줌마는 장례식 도중 나를 둘러업고 나와선 택시를 잡아탔다.

“아가. 네 잘못이 아니야. 이젠 내랑 살자. 아가도 좋지?”

울지 않는 딸을 보고 교인들은 왜 울지 않냐 애가 엄마의 죽음을 바란 아이마냥 미친 것 같다고 제 친아빠를 술병으로 때리기까지 한 애새끼니 오죽하겠어. 너는 내 달동네가 얼마나 낡은지 듣고  개자식들이네 하고 욕을 했다.

“다음에 만나면 급소 노리고 죽여 놔.”
“그래도 될까?”
“내가 사랑하는 너니까. 네가 내킬 때 조져버려.”

아파야 청춘이다. 아프기를 건너 가누기 벅찬 복부를 움키고 감내해야 하는 젊음은 청춘이긴 할까? 젊음을 배타하는, 학생이고 어린 단어는 누구의 입맛이었을까. 입술은 나의 것인데 어디서나 부는 산들산들 산들바람이 너를 거쳐 나에게로 불었다. 아, 시원하다. 더없이 행복하다. 나를 기다리는 집에 네가 있고 네가 사랑하는 집에 금붕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널 사랑하고 있다. 우리의 사랑은, 매화다.

“얘가 왜 이래.”
“이 말 전해주러 왔어요, 이모. 나 저 개자식 죽어도 용서 못해요. 안할 거예요. 할 마음도 없어요. 평생 그렇게 살다가 뒤져라! 갈 때 전화질 하지 말고.”

첫 눈에 안착했다. 눈비가 내린다. 전신이 눈송이며 비도 아닌 근원에 젖어들어 운행의 종착역을 알렸다. 쿵쾅 박동하는 맥. 달이 내게 속삭였다.

“그만 널 풀어줄게.”
“….”
“자유롭게 널 놓아줄게.”

차선을 타고 향한다. 너와 그리고 금붕어가 있는 곳으로. 눈비는 무른 눈발로 변해 가는 길 곳곳마다 설경이 깔려있었다. 파란 신호는 막히지 않고 내뻗쳐서 추운 입김을 헤집었지만 어딘가 포근했다. 입술은 나의 것이 되었고 어디에서나 너의 바람이 함께한다.

그러니 널 만나게 된 건 운명이다. 그러니 네가 죽지 않길 바란다. 그러니 네가 나를 떠나지 않길 바란다. 그러니 네가 나를 좋아하길 바란다. 그러니 네가 나를 사랑하길 바란다. 그러니 네가 나를 밝혀주길 바란다. 그러니 나는 네가 살아 숨쉬길 바란다. 내 안에서.

아파트가 기다랗게 느껴졌다. 올라서는 엘리베이터. 일자형 복도. 문을 열어주는 너에게까지 일분일초가 긴박하고 애틋하다.

“사랑해.”
“조졌어?”
“조져줬지.”
“어구, 장하네. 배고프겠다. 저녁 만들어줄게.”
“저녁 말고 뽀뽀.”
“힘든 일 했으니까 해줘야지.”
“안 힘들었어. 네가 있어서.”

너의 올곧은 눈썹에 입술이 닿았다. 하루 고단했던 살색 스타킹이 내려가고 너의 셔츠가 눈발에 휘날려 풀려진다. 때로는 너르게 입김을 벌리고 서로를 껴안았다.

“남자가 꼭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그치.”
“내 사랑하는 여자가 너라서 좋아. 만약에 네가 남자였어도 반나절 울고 사흘 웃고 고백했을 거야. 네가 남자고 나랑 성도 다를 거니까. 근데 널 잊지 못해서 가슴이 뛰고 사랑했다면 나는 말했겠지. 좋아하고 사랑해. 나에 대한 너의 생각은 어떠니? 나는 너 사랑하는데 지금 어떤 기분이야?”
“기뻐. 더없이 행복해.”

욕실 샤워기가 물을 내뿜고 오돌토돌한 타일에 김을 피워 오른다. 눈, 코, 입. 차례차례 적셔진 너를 쳐다본다. 성욕은 있었지만 거친 욕망은 없었다. 괜찮은 건가 물어봐주고 자주 마음을 읊조려주고 저건 저렇다 말해주고 틀린 건 고쳐주고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알아봐주는 것. 대인관계의 배려는 유쾌하지 않지만 사람이 사람을 보고 사랑하고 사랑하게 하는 도착 지점은 동의가 불가결하다. 그렇지 않고 막무가내로 들이밀면 그것은 범죄지 사랑이 아니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사랑을 하고 있다. 너는 욕조에 물을 받아두고 나를 앉혀놓았다.

“예쁘다.”
“어디가?”
“가슴.”
“가슴 작은데.”
“작아도 예뻐. 크면 무겁고 땀 차.”
“너는 크면서!”
“크니까 얘기해주는 거야. 가슴의 선배로서.”
“가슴의 선배래. 자신감 있나 보네.”
“네가 인정하잖아. 네 말은 틀리지 않아.”
“맞아. 내 말도 틀리지 않아. 사랑해.”
“사랑해.”

물이 한가득 들어있는 욕조에 나를 향해서 달려드는 너. 얄궂게 내 뺨을 당기고 입술에 입을 맞춘다. 시계가 빨리 회전했다. 어느덧 붉은 새벽이었다.

“시간이 휙 갔네.”
“아쉬워?”
“아쉬워.”
“담에 하자. 그땐 찐하게, 오래.”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 뭇국을 끓여먹었다. 소고기가 맛있었다. 초침 소리가 없는 시계를 구입하는 것이 좋나 인터넷 검색을 거치다가 수시로 깨서 불면증이 왔나보다고 원인은 초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네가 그랬다.

“있잖아. 말할 거 있어, 너한테.”
“뭔데.”
“나 오늘 제주도로 가봐야 될 것 같아. 제주도에 언니 내외가 살거든. 작년에 아들을 한 명 낳았는데 병으로 죽었어. 안아보지도 못하고 인큐베이터에서 죽었대.”
“언니한테 그 소식이 온 거야?”
“아니, 아빠. 옛날에 계모랑 재혼해서 깨질 대로 깨지고 언니랑 난 죽을 듯 생고생만 하고 방치해놨던 아빠. 아빠도 제주도에 사셔.”
“그렇구나. 언제 돌아와?”
“1월 1일 새해. 오전 다섯 시 비행기.”
“마중 나갈까.”
“안 돼. 멀어.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널 사랑하기 위해 달려올게. 알았죠?”
“응. 다녀와요.”

[ 공항 도착. 착륙하면 문자할게. ]
[ 네가 없으니까 이상하다. 네 집에 쌓인 먼지 청소하고 점심 저녁 챙겨먹고 자고서 내일 돌아갈게. ]
[ 내 집에서 아주 다 해먹지. ]
[ 벌써 보고 싶다. 사랑해. ]
[ 사랑해. ]

너만이 없는 이틀 중에서 일일은 네 몸 냄새가 밴 아파트 내부에 살며 베개를 안고 지냈다. 너의 머릿내가 나는 침대는 어젯밤 생각나 우두방정을 떨게 하고 금붕어가 그리워지게도 했다.

“먹이 주는 거 깜빡했네.”

청소기를 돌리고 얼른 잠들려고 노력했다. 너를 기다리는 날을 줄여보려고 두 시간 늦장부리고 차를 운전해 집으로 귀가했다. 집 전화기는 부재중이 열네 통이 와있었지만 놔두었다. 네가 보고 싶었다. 사랑한다고 안아주고도 싶었다. 네가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기 전날 밤, 꿈을 꾸었다.

나는 온몸을 반구 비늘로 덮고 날개를 팔랑이는 우리 집 금붕어 한 마리였다. 거실에는 캐리어가 있고 나, 금붕어는 너를 보았다. 네가 나를 보며 ‘다녀왔어’라고 작별하는 것 같았다. 다녀왔는데 작별인가 서글퍼져서 어항 가까이 다가갔는데 금붕어가 펄떡 뛰어올랐다. ‘물 있는 어항 안에 살고 꺼낼 수 있고 또… 너 닮았어. 금붕어.’ 금붕어는 꺼내면 죽는다. 너는 내가 금붕어를 닮았다고 했다. 눈을 뜨고 입가에 흐른 물을 닦았다. 휴대폰 헤드라인에 기사가 떠있었다.

[ 긴급 속보. 오늘 오전 다섯 시 제주도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항공 비행기가 날개 결함으로 추락해 탑승 승객이 전원 사망했으며 당국은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

오늘이었다. 네가 귀국하는 날. 새벽에 온댔다. 아침 여섯시 기상 알람에 일어나 본 건 어항 밖을 나와 팔딱 뛰지 않는 금붕어의 사체였다. 너는 나를 잘 안다. 나는 너를 잘 안다.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는 나였다. 그러니 널 만나게 된 건 운명이다. 그러니 네가 나를 떠나지 않길 바란다. 그러니 네가 나를 사랑하길 바란다. 그러니 네가 죽지 않고 살기를 바랐다. 나의 꿈속에서.



금붕어가 죽은 아침이었다. 네가 죽고 나는 제주도에 가서 너의 아버지를 만났다. 너의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나는 네 여자고 우리는 사랑하는 연인사이였다고 말했다.
“모자란 저희 딸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자라지 않아요, 정이는.”
“…….”
“그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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