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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가 죽은 아침

2017 02 (2018 07 수정)

※이야기가 끝나면 공백 제외 1271자 해석이 붙어있습니다.


새삼 빈자리가 거대하게 나를 감금하고 걸터앉아 발뒤꿈치를 포개고 있었다. 세심하지 않구나, 넌. 배려심도 있지 않구나, 넌. 사랑은 받아도 없는 듯 펑 터져버려서 죽을 때 짓는 미소도 앞이 가렸다. 성가시다. 펑 터져서 눈물은 쓸리고 피가 깃털이 달린 것처럼 난다. 날아서 네 피부에 묻는다. 새삼 나를 지키는 게 없다는 걸 체감한 어제였다.

향연 구십구. 외할머니는 유골만을 남겼다. 백 살은 못 사셨네. 죽어야만 아는 사후세계는 사고 없이 무탈한가요. 새삼 목숨 부지 오래하신 할머니가 우는 빌어먹을 것들을 지척에 두고 달려 나가는 허연 두발이 보이다가 말기도 하고 하루가 지났다. 오늘이었다.

세심하지 않고 배려심도 있지 않은 네가 귀국하는 날. 새벽에 온댔다. 아침 여섯시 기상 알람에 일어나 본 건 어항 밖을 나와 팔딱 뛰지를 않는 금붕어의 사체였다. 살리기 전에 변기통에 버리기 전에 죽어있었다. 너는 어쩜 나를 잘 안다. 살고자 주둥이를 벌름거리면 죽기도 전에 내가 처리할 줄을.



첫 고백과 어항과 금어와 달
햇살을, 맥 빠지게 너를 담아냈던 첫 햇살을 나만 받아내지 못했다. 네가 가려주어서. 나는 부족한 사람으로 이해 받지 못하는 사랑을 했었다. 고백을 하는 이날에도 여과 없이 꽁꽁 여몄던 사랑이 네게는 이해 받던 십 분의 시간.

“번들거리고 뜨끈하고 새하얀 것이 손바닥에 늘어나는 연기, 입김이야. 불어볼래? 입김.”
“입김은 말하면서 나오잖아.”
“쉬잇. 입술 말아서 부는 것만! 입김하고 금붕어 딱 두 개만 할 수 있게.”
“금붕어는 왜.”
“물 있는 어항 안에 살고 꺼낼 수 있고 또… 너 닮았어. 금붕어.”
“나 머리 안 좋아 보이니?”
“아니. 그렇다고. 그냥 하는 말.”
“난 그냥 한 말 아니었는데.”
“실감 안 나. 확 치고 들어오기 있기냐. 어?”

입김이 진다. 빨간 입김이다. 쉬었다 헤뜨러지는 뜨끈하고 하얗고 너의 끝마디에 달아나는 숨. 문 닫힌 가게 전광판이 산소와 전기장을 덥힌다. 건너, 건너, 건넛집에 네가 사는 아파트. 네가 좋아하는 아파트에 건너, 건너 사는 너.

“거짓말은 하고 있어서 무서운 거야. 거짓말 안 해. 그러니까 잘 들어. 너 사랑해. 나랑 사귀자.”
“고백은 내가 했는데.”
“알아. 근데 나도 고백 좀 해보게.”

첫 고백은 성공적이었다. 너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일도 어렵지만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게 하고 사랑하게 되는 일은 영혼을 보는 일보다 까마득하고 멀다. 이 처음 고백에 넌 날 사랑한다 했고 별똥별만큼 체증이 있는 행성이 되었다. 금붕어 살까? 금붕어 소리를 오늘따라 길게 내었다. 하도 빈번하게 내서 금붕어 소리가 내 입인지 네 입에선지 뭉뚝하고 걸쭉해졌다. 묽은 죽 발성이었다. 팡팡 혀뿌리에 발그레 떨어져오는.

“나 한 마리, 너 한 마리 사자.”

금붕어 두 마리. 첩첩산중 시골에 제일가는 달동네는 내 고향이기도 한데 ‘달의 어항’이라는 고기 음식점이 있었다. 삼겹살을 팔고 갈비를 굽고 소고기도 즉석으로 팔았다. 음식점 아줌마는 관절염에 걸린 꿋꿋한 덩치 큰 개를 기르고 예뻐했다. 개가 죽으면 자신도 가버릴 거라고 협박인 듯 협박 아닌 푸념을 하는 것을 들었었다.

어른들에겐 박한 여자였지만 어린아이는 금어처럼 대했다. 금어는 아줌마가 기르던 개 이름이다. 금어. 바다도 없는데 어(魚)가 붙어요? 그 어가 아냐. 금어가 죽고 나서도 아줌만 금어를 따라 가지 않고 그 어가 아닌 다른 어를 가르쳐주지 않았고 어항을 큰 걸 장만해왔다. 금어는 내가 봐도 착하고 지를 때려도 사람을 암만 잘 따르는 애였지만 한 번 죽음의 고사를 치르게 되었을 때 순한 금어는 아줌마를 물었다. 세게, 피가 났다.

“아파요?”

“안 아파.”
“안 아픈 상처는 없다고 책에선 그랬는데….”
“책에 나오지 않는 아픔도 있어, 아가.”

저런 것도 살려고 그러지. 금어는 아줌마에게 상처를 내고 아파하며 갔다. 튼튼한 유리로 된 어항을 가게 식탁보에 옮기고 금붕어가 든 비닐을 풀었다. 금붕어는 아줌마의 생애 마지막 어가 되었다. 달이 뜨는 달동네에 달의 어항.

“아줌마 이 어항에는 달이 떠요?”
“뜨지, 내 보여줄까?”
“응! 보여주세요. 어항 안에 달.”
“저녁이 되면 어항엔 달도 살고 금붕어도 살아. 보고 싶으면 도와라, 아가. 이거 들고 나가야지. 모서리 잡고 하나, 둘, 셋. 하면 드는 거다. 하나.”

파도가

“둘.”

내게로 온다.

“셋.”

출렁, 출렁이면서. 어항 건너, 건너에 음식점 옆. 어항을 내렸다. 달이 있다. 그 내면은 달이 있다. 금어가 있다. 나의 첫 어항은 탄내와 살코기 냄새가 뒤숭숭한 아줌마의 집, 생계 수단인 가게 앞에서. 사랑한다. 모든 세월을 말할 수 있게 됐다. 금어처럼은 아니지만 미루지 않고 자랐다. 나는 열여덟을 맞았고 그녀는 쉰여덟에 눈이 멀었다. 사랑한다.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용기는 없었다.

달의 어항. 내 어항과 금어와 달동네가 있는 곳. 내 달과 금어는 하늘로 숨었지만 ‘달의 어항’ 물고기 집은 있었다. 아줌마가 없는 곳이다.
너는 달의 어항으로 들어간다. 나를 데리고 간다. 나 한 마리, 너 한 마리 사려고 들어간다. 금어가 짖었다.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금붕어가 있다. 주황색 한 마리, 청색 한 마리. 푸르스레한 어항에서 일순간 초승달을 보았다. 살지 못해 죽는 사람들,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 나의 입김 속에 머문다.

“이제는 금어 따라갈 수 있겠네.”
“죽는 게 기쁘다고.”
“안 기뻐?”
“책엔 안 그렇던데요.”
“책은 안 알려줘. 조금씩 간만 보지.”

금붕어가 죽은 아침. 아줌마가 돌아가셨다. 안락사였다. 안락사한 개를 따라 그녀도 죽었다. 내가 있고 누군가는 스스로 사라지고 그리고 금붕어가 있다. 모든 사랑하는 순간과 출렁, 출렁 출항하는 뱃머리. 사랑한다. 오늘에야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랑하는 한 사람의 순간은 부스러지고 저 자리에 대신 네가 있다.

“아줌마.”
“으응.”
“잘 자요. 달동네 가면 전화하고. 목소리라도 듣게.”
“잘 가. 운전 조심히 하고. 앞뒤 잘 살피고. 가는 길에 모르는 번호 떠도 전화는 받고. 목소리라도 들어보게.”
“응. …응. 그럴게.”

간다고 가는 것을 주무시라고 눈을 뜨면 내가 곁에 붙어있기라도 할 것처럼 다독였다.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운전 조심히 하고 앞뒤 잘 살폈고 집에 들어가던 길이었는데 모르는 번호만 뜨지 않는다. 기다리고 있을게, 목소리라도 듣게. 그땐 사랑한다 말할게요. 해보니까 마음의 준비랄 것도 없더라. 사랑해.



금붕어가 헤엄친다. 반구 비늘을 두른 채 나를 앞질러 다시 돌아온다. 미적거리는 지느러미로 몇 미터를 지나 걸어갈 수 있었을까. 새로 사온 금붕어 두 마리가 한 아이를 뜯어먹었다. 얼굴에서 몸통까지 이어진 잔뼈는 물 위의 섬이 되고 내가 보는 금붕어는 수질이 흐려져 간다. 너와의 잠자리는 슬픔이 없었다. 멈추라면 멈추었고 계속하자고 그러면 연신 키스를 해왔다. 너는 내 한 부근의 손가락만 긁어내리며 나의 모든 표정이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사회생활하려면 그러잖아. 웃고 다니고 티내지 말고 뭐든 해보겠다고 하고. 보고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하라고.”

바로 너의 뒤에서 금붕어가 나를 비웃듯 쳐다보고 있었다. 꿈이 아니야 너는. 열아홉의 성숙한 꿈도 아니야 나는. 그저 널 사랑하고 있다. 편견을 의식해서는 아니었다. 비밀로 부친 연애는 우리가 어항을 물갈이하지 않고자한 연애 방식이다. 밝히면 안 돼, 너와 나의 사랑은. 엄벙덤벙 끊겨도 안 돼, 나와 너의 사랑은, 매화다. 우린 미친년이 아니다.

“선 봐라. 내 친구 아들이 있는데 직업도 좋고 인성도 괜찮더라. 네 나이 삼십이 되어가잖니. 예방 해놔야지. 만나봐.”
“결혼 안 한다고 했잖아.”
“네 외할머니 머지않아 돌아가신다. 남편감이라도 보여야지. 사람 앞길은 모르는 거야.”
“됐어. 만나는 사람 있어.”

외할머니는 그것이 걱정이셨다. 달동네에 살았으면서 없이 살아온 게 수치라고 달을 꼿꼿이 보지 못하는 사람은 외할머니가 오직이었다.

“누군데?”
“금붕어.”

이모네 청색 금붕어가

“저거?”

영정사진으로 나를 거머삼키려 한다. 비교하지 마, 저거하고. 나와 너의 사랑은 저런 것이 아니다. 녹녹한 주황이다. 수챗물이 끌려올라와 입김으로 쏟아진다. 쓰다. 쓰고 비린 물이 흘려들어와 심장까지 냉증을 발열하며 달린다. 손발이 차다. 냉기에 잘 든다는 약을 먹어도 여전히 차기만 했다. 약장수는 약사도 아닌 주제에 비오는 날 우산을 받들고 두 번째 약을 쥐어주었다.

“이게 그렇게 좋아. 나아질 거야.”
“안 좋던데요.”
“그렇담 아가씬 마음이 차서 그려.”
“아주머니는 알아요?”
“알지. 책에 나오거든.”

목이 허전하지 않게 찬바람마저 들어올 새 없이 둘러 여분이 남는 수제 목도리가 허옇게 보이다가 말기도 하고

“스물일곱 봉지만 줘보세요.”
“사가게?”
“네.”
“적당하겠구먼.”

하루가 지났다. 십이월 스물여덟째 저녁이었다. 외할머니가 네 시 사십삼 분에 금생을 떴다는 부고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로 아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잘 지내냐.”

아빠였다. 외가에 죽음을 친가에서 알리는 것이 매섭다. 도망갔잖아, 당신. 곪아 죽는 엄마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차고 달동네에 못 살겠다며 달이 안 보이는 데로 떠났잖아, 당신.

“장모님이 용서해주셨다. 너도 그만 용서해.”

사랑을 증오하는 일에 이타적 관용이 따라붙는다. 부모를 죽인 원수도 사랑하라. 사랑해 마지않아라. 근데요, 하나님. 당신은 원수를 지옥에 보낼 수가 있잖아. 난 그럴 수가 없네요.

“정신 못 차렸죠?”

당신이 가장 잘 알면서

“용서 못해요.”

세상에서 가장 들어주기 싫은 부탁을 한다. 하나님 제발 계시다면 저 인간을 사랑하지 않게 하세요. 무디어지는 것과 남을 용서하는 건 같을 수 없다. 상처 자국이 아물었다 뿐 매가 내린 붉은 붓기는 회고할 때마다 되살아난다. 강자는 약자를 보고 희열을 느끼고 약자의 바깥에는 강자의 입김이 분다. 입술은 나의 것인데 어디서나 분다.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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