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빛이자 어둠. 그대는 우리의 눈에 더는 띄지 않았다. 우리는 사람의 이름들을 듣고 좌절했다. 돈을 벌고 돈으로 방을 얻고 먹지 못해 죽어가는 아이의 엉성한 갈비뼈를 보아왔다. 사람의 몸이 말라간다. 빼빼 말랐다. 삶에 출구는 없었다.


서은은 지은을 인터넷 정기 모임에서 만나 인생사를 들었다. 그녀는 되겠다, 생각했다고 한다. 발설해도 그만 숨겨도 그만. 아파트 비상계단에 풍경은 한가롭다. 비상계단 층수가 적힌 번호판 위쪽, 창문이 달렸고 창문은 낮과 밤의 풍광이 달랐다. 여름의 일곱 시, 겨울 오후 일곱 시의 하늘이 다르듯이 집에서 내다보는 것과 계단에서 보는 밖은 느껴지는 온도가 있었다. 서은은 수학적 계산이 느린 아이로 태어나 계산 능력이 빠르지 않다고 했다. 구구단을 초등학교 삼학년이 되어 뗐고 고등학교 때까지 손가락으로 덧셈 뺄셈을 셌다. 좋아하는 일은 빨리 습득하지만 싫어하는 일은 제일 더디고 못했으며 음악 시간에 연주하는 리코더, 영어 시간에 배우는 영어 문장은 서은이 싫어하고 못하는 과목이었다. 선생님은 노력하면 결실을 맺는다고 방과 후 그녀를 따로 불러 가르쳤다. 서은은 집에 늦게 들어갈 구실이 만들어지면 훨씬 마음이 편안했다.


서은의 어머니는 개척교회를 꾸린 목사다. 빚을 지고 차린 교회에 성도가 오지 않고 하룻밤 재워달라는 노숙자만 찾아왔다. 어머니는 그가 중학생 서은의 방을 쓰게 하고 서은의 침대를 내주었다. 심성이 여렸던 서은의 어머니는 집을 마련할 때까지 살아도 된댔다. 노숙자는 서은의 방에 빌붙게 되고 일당을 벌어 전부 어머니께 내어드렸다. 어머니는 좋아했고 서은은 슬펐다. 방 두 칸에 큰 성전, 자택 겸 교회에 셋이 살았다. 서은의 아버지는 술고래였다. 주일에만 얼굴을 비추고 어머니의 지갑에서 돈을 빼내 사라지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바람이 빠진 풍선 같았다. 아버지의 신발이 나가 주변이 허연 신발장에 서은이 침을 뱉었다. 교회는 난방이 되지 않아 난로를 켜야 공기가 훈훈해졌다. 난로 스위치를 켜고 담요를 두른 채 서은은 제 물건에 손을 댄 노숙자가 죽으면 어떤 방식으로 죽을까 곰곰이 상상했다. 노숙자는 서은의 옷장 서랍에 본인이 입은 속옷을 접어 넣었다. 문틈으로 서은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더러워. 더러워. 더럽다.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사건을 덮었다. 열다섯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자꾸 건넌다. 나쁜 사람이 널 잡아가려고 하면 ‘안 돼요.’하고 ‘하지 마세요.’ 해, 나쁜 사람은 멈출 거야. 서은을 담당한 담임교사는 가을까지만 그녀의 공부를 봐주고 천천히 눈을 돌렸다. 식상하고 형형한 시선이 질려가는 계절이 온다. 겨울이 울었다. 울어야할 여자는 서은이건만 겨울은 눈을 흘린다.


눈물을 환영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슬퍼서 우는 눈물, 좋아서 우는 눈물. 눈물은 슬픈 걸까 슬퍼지는 걸까, 슬픈 것을 사람은 꺼려할까 꺼려한다면 행복한 걸까. 서은은 웃고 있나 안 웃을 때가 많나. 일부러 안 웃을 때 슬픔이 치미는 것은 살점이 스러지는 신호탄일까.


“²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자랑이 될 수 있다.”


이야기를 쉬어가며 자랑이 될 수 있다고 한탄한다. 지은도 동감하는 눈치다. 서은은 어제 서점에 가서 본 시집 얘기를 꺼내들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그건 시집 제목인데 시라곤 중학교 교과서에 읽은 시가 다라서 읽어도 되나 망설였지만 용기 내 시집을 펼쳤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²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서은은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고 자신을 독하게 채찍질하던 무수한 눈동자들을 떠올렸다. 죽은 아버지의 눈, 술을 마시는 서은이 무얼 마시는지도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차가운 눈, 무자비하게 웃어재끼며 제압한 노숙자의 눈, 갓 태어나 울어재끼는 아들의 눈. 서은을 보고 숙덕거리는 이웃 부부의 눈, 서은이 거울에 비친 여자를 바라보는 눈.


서은은 눈을 보며 눈물을 참았고 눈물을 흘려보냈다. 왜 그렇게 살아요. 기자가 그녀에게 질문했다. 이제 돌릴 수 없는 슬픔을 서은이 다시 잇는다. 그러니 그때는, 슬펐다. 손등이 떨린 것처럼 볼도 함께 떨었다. 흘러내린 슬픔이 가득한 그때 서은은 눈을 닫았다. 살이 얼어붙는 추위가 세상을 점령하고 사람들도 세상을 따라 추위를 제창했다. 완연한 겨울이었다.


서은의 친부모는 집안 어른이 주선한 맞선 자리에 나가 식사를 건너뛰고 섹스를 했다. 우리 담부턴 만나지 맙시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고 어머니는 남자를 사귀었다. 남자는 어머니의 새침한 입술에 빠져들었고 어머니는 빠져든 남자의 눈을 홀린다. 생리통 때문에 다달이 고생을 하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섹스를 한 그 달에 생리를 하지 않았다. 임신 테스트 결과, 두 줄. 임신이었다. 양가 집안은 상견례를 열었고 아버지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이별을 전했다. 낙엽이 지는 여느 늦가을에 서은이 태어났다.


공주님이에요, 어머니는 우는 서은을 떨쳤고 아버지나 병원에 들러 딸의 얼굴을 살폈다. 아버지는 옛 애인의 이름을 따와 딸의 이름을 서은으로 지었다. 은이야, 은이야. 내 사랑 은이야, 나의 사랑스런 은이야.
어머니는 과거에 정을 나눈 남자. 남자의 눈을 회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서은은 외가에 맡겨졌고 얼마못가 서은은 어머니에게 되돌아왔다. 장난감을 사들고 서은을 보러 집에 오는 아버진 서은이 초등학교를 입학하자 잦은 외박이 더 잦아졌다. 이웃의 전도를 받아서 예배를 나간 어머니는 찬송을 흥얼거리면서 옆집에 맡긴 서은을 데려와 같이 춤을 추었다. 춤을 추는 어머니는 아련하고 어여뻤다.


어머니가 꾸미고 나가면 남자들은 어머니를 젊게 봤다. 동안이고 늘씬하고 주름이 없고 가슴이 작은 어머니. 서은도 어머니를 빼닮은 딸. 이름은 아버지가 사랑한 여자의 이름에서 따왔지만 그녀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난 서은이었다. 교회 장로는 어머니를 노리고 있었다. 딸 넷이 있고 부인과는 사별한 장로가 불러 외출한 어머니는 한동안 춤을 추지 않고 밤이면 밤마다 괴성을 지른다.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어머니를 진정시켰고 전화를 받고 달려온 아버지가 어머니를 달래었다. 서은은 아버지가 어머니의 이름을 자상하게 불렀던 순간 아버지는 겉옷을 내치고 추운 길가를 달려가 장로의 멱살을 틀어쥐러 가셨다. 장로는 불어터진 면상으로 변했다. 그 불어터진 얼굴로 흰 봉투를 서은에게 주고는 도망치듯 줄행랑쳤다. 서은은 장로가 어머니께 나쁜 짓을 했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콱 죽어버려라!”


서은의 주저를 하늘이 들었는지 우연의 일치였는지 장로는 차에 받혀 죽었다. 서은은 후자를 들었다. 우연, 우연이다. 어머니는 심리치료와 상담을 받으러 남들 정신을 봐주는 병원엘 가신다. 외박을 끊은 아버진 취직자리를 알아보시며 서은이 먹을 쌀을 씻어보고 졸린 서은을 재우고 투정부리는 서은의 이를 닦아주던 그즈음이 서은은 가장 행복했다.


“고마워요.”


아버지는 아내의 인사에 눈을 떨궜다. 미안해요. 기센 아버지가, 어머니가 아내인 줄도 까먹는 아버지가 콧대를 숙인다. 어머니는 서은을 안아주고 동화책을 읽었다. 토끼가 등장하고 재주를 부리는 동화다. 서은은 동화 줄거리를 알지만 엄마의 낭독을 듣고 잠을 청했다. 서은의 어머니는 서은이 잠들기 전 시집을 집었다.


어둡게 깊게 목메인 하늘.
꿈의 품속으로써 굴러 나오는
애달피 잠 안 오는 유령의 눈결.
그림자 검은 개버드나무에
쏟아져 내리는 비의 줄기는
흐느껴 비끼는 주문의 소리.
김소월, 진달래꽃 열락 中


서은이 엄마, 하연은 학창시절 그림을 잘 그려 인기가 많았다. 남자들은 머릿결이 차분하고 말씨가 청량한 하연을 짝사랑했다. 지역 명가에서 자란 외손녀는 따르는 남자가 일렬쯤 있고 외모가 출중한 법이었다. 하연은 예의가 바른 허옇고 말간 소녀였다. 하연이 별명은 백조, 우아하고 하얀 백조. 하연의 친모는 하연을 낳다가 죽었다. 어머니 배를 찢고 나온 아기, 그것도 여아가. 부인이 죽고 시집보낸 외동딸이 죽고 사위도 떠나보낸 외조부는 하연을 떠받들며 키웠다. 아가씨, 하연 아가씨. 하연은 참한 여학생으로 컸다. 하연은 고백 편지를 읽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과를 보낸다. 하연을 친자식처럼 얼렀던 유모는 “우리 아가씨. 부럽네요, 부러워. 거 많은 편지 중에서 적당한 놈 골라 봐요.” 하고 벙글거렸다. 하연은 쉽게 시기를 받고 부러움을 샀다. 외조부마저 돌아가면 기댈 곳이 없어지는 하연이 부럽다고 남들은 미워했다. 하연은 적당한 거 한 개를 집으면 됐었으니까.


하연을 미워하는 자는 하연이 택하는 삶이 모두 적당한 것이고 쓸모없는 헛것으로만 여겼다. 부잣집 외손녀의 생을 헛되이 허비한다고. 하연은 가족에게 평가되고 외부에서도 평가의 중심에 드나든다. 하연을 가지려 욕정을 품은 남정네는 셀 수 없었고 친척 또한 있었다. 눈물바다가 된 졸업식장 대강당은 하연의 손수건이다. 울고 있는 일동이 선생님께 감사인사를 드리는 동안 하연만 서럽게 말도 못하고 울었다. 하연이 학교에 애착이 있는 애였나. 몇몇은 의문을 가진다. 웃는 무리에 서면 웃어도 보는 사람이 없다. 통곡하는 무리에 서면 울어도 마주하는 사람이 없다. 십구 년 뭉친 울음을 쥐어짜낸다. 엄마, 절 낳고 돌아가신 엄마. 하늘에 계신 나의 어머니. 여긴 무서워요. 열아홉 하연은 죽음 따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기다리고 죽음에게 부친 답장을 기다렸다. 죽음의 필체는 하연을 묵직하게 내리감았다. 죽음은 우리의 출구로써 밤이 되면 우리 뒤에서 자전거를 이끌었다.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몸을 다치게 한다. 스스로 넘어지고 거짓말할 수가 있다. 이것은 죽음이 강간범임을 안다. 멀쩡한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가져가버리니까, 죽음은 강간범이다.


외조부는 하연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가 외동딸을 죽게 내버려뒀다고 심지어는 죽이려고 했다. 너만 없었으면! 내 딸을 돌려놔! 외조부의 재산을 노리던 하연의 이모부는 “드디어 미쳤구나. 하연이 너도 끝이다.” 콧노래를 불렀고 하연은 싸라기눈을 몽땅 뒤집어 쓴 채 이모부가 마실 잔을 찾아내 잔 입구에 독약을 묻혔다. 졸업할 때 의사의 아들이 준 약병이었다. 의사의 아들은 하연을 사랑했고 하연에게 독약을 선물했다. 너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 하연아.


“내일 밤 나를 위해서 죽어줘.”


부모를 뵈고 온다던 유모의 소식이 끊겼다. 이모부가 돈을 준 게지. 의사의 아들. 근데 죽을 준 몰랐다. 옥상에서 쿵, 차 운전대를 뚫고 쿵, 없어진다.


“바보. 믿는다 해도 의미가 없잖아.”


의사의 아들이 죽은 새벽녘은 망자의 잔칫날이었다. 외조부가 운명하고 이모부는 사망했다. 세 명이나 죽고 하연은 세 명을 잃었고 한 명은 하연을 배반하고 한 명은 모독했는데 슬픔은 가죽을 드러내보였다.


「아가씨 미안합니다.」


유모가 유언처럼 남기고 간 편지를 찢고 나서야 흘러나온 눈물을 우그러트렸다. 목욕통에 물을 쏟는다. 대야에 물을 받아 제가 젖어들게끔 수굿이 벌린 팔다리에 채워 넣었다. 슬픔의 가죽이 하연을 잡아먹는다. 야금야금. 아는 인간의 시체를 싸맨 흰 천을 보면 지난 삶이 하연을 전율케 했다.


하연이 이십대 중반이 되자 수차례 맞선이 들어오고 맞선 상대는 수없이 그녀를 품평했다. 하연은 의사의 아들이 준 약병을 바구니에서 꺼내보고 잔다. 의사의 아들이 사랑한 증거. 하연은 사랑의 증거를 두어 방울 마셨다. 죽지 않는 독약이 식도를 타고 퍼진다.
 
 
²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시,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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