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인어를 봤다. 꼬리의 비늘이 내가 든 비닐봉지에 겹쳐 빛난다. 정신없이 파도에 쏠려 팔에 피멍 무늬가 나는 인어 한 마리. 허우적대는 헤엄만 칠 줄 아는 내가 동경하며 본 것은 인어가 등장하는 동화였다. 목소리의 항구에 인어를 절망에 빠트린 폭풍, 나는 폭풍을 살점만 찌운 인중으로 들이박는 중이다. 무릎담요를 인어에게 덮어 안았다. 누구세요, 한국어가 비린내를 비집고 슬리퍼를 차지했다. 알 거 없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안 가는 인어의 귓등에 널 데리고 고향으로 간다고만 속삭였다.
   
   
02.
천애 고아. 부모님이 없단 건 냉대만 훠이 부는 현실에 차용됐다는 말이다. 불쌍한 건 너희면서 일일이 ‘저것’을 지칭하며 나를 희생양의 대가로 삼았다. 인어가 된다면 너희를 바다에 끌어 익사시켜주고 싶었다. 물이 폐를 점령하고 귀로는 소금이 따끔거리고, 그 위의 나. 우월한 나. 너희가 매질한 나. 지느러미로 너희를 구속하고 뼈를 솔질할 재간이었다. 인어는 내가 아니고 큰 욕조에 가두어놓은 저 인어 한 마리지만.
   
   
03.
인어는 졸려했다. 눈꺼풀이 부은 거 같이 부스럼이 떨어지고 심장은 제자리에 없었다. 누가 네 심장을 앗아갔구나. 인어의 유언이 ‘누구세요’였다고 꺼내도 인심이 거지같은 지인은 물증을 믿지 않는다. 생선이 되어가는 인어에게 난 고향으로 데려가준다고 말했다. 인어는 상냥하다. 욕조에 누워 제 뒷목도 가누지 못하는데 기쁜 듯이 웃고 있다. 상냥한 인어를 욕조에서 걷어냈다.
   
   
04.
인어가 죽은 지 이틀째. 얼떨떨한 표정을 숨기고 인어를 살폈다. 보호색을 띄는 푸른, 파도의 빛깔. 머리카락이라기엔 비단 같은 실이 늘어져 있었다. 눈꺼풀은 길며 피부는 지리고 써늘하다. 내 피부는 고열이 심하게 도진다.
   
   
05.
“멍청한 놈.”
아버지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신 우등생이셨다. 동네에 놀림거리가 되는 날 낳으신 건 그의 수치다. 성적은 전교꼴찌에 엉뚱한 인어가 되겠다고 설치지 싸움질도 능숙하지 않아 눈가가 찢어지고 손등은 까지고, 30대에 화병을 얻으신 서울대생 아버지는 간암으로 자유로운 몸이 되셨다. 축하드립니다. 아버지.
   
   
06.
승이 아버지, 승이 아버지. 아들을 몹시 고까워하신 우리 아버지. 영정 사진에서도 그는 승이 아버지였다. 잘 해라. 인어가 된다는 요상한 얘기는 입 밖에 꺼내들지 말고. 그래야 장가도 가고 할 거 아니냐. 친인척은 아버지뻘 되는 숙부를 내세워 이것저것 가르쳤다. 감 놔라. 배 놔라. 진정 꼴사나운 사고를 쳐야 날 휘두르는 언성을 낮추고 도망칠 것이다. 저도 처가 있고 자식이 있고 어머니가 있는데 외딴 형의 자식을 거들떠나 보겠나. 아니다.
   
   
07.
얼마 가지 않았다. 인어가 된다는 나의 의지는 확고했다. 올케가 저 세상에서 보고 있을 텐데 창피하지도 않니? 고집 그만 부려. 나는 고모의 말씀을 토씨 빠트리지 않고 돌려드렸다. 어머니가 저 세상에서 고모의 만행을 보고 계실 텐데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고집 그만 부려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그녀의 추한 얼굴이 손찌검을 날렸다.
“네가 그러고도 오빠의 아들이니?”
“그의 아들이 아니면 저는 인어가 될 수 없죠.”
“인어, 인어, 인어! 네가 좋아하는 인어가 돼서 콱 죽어버려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추잡한 손바닥에 죽어도 난 기쁘지 않습니다.”
짝.
끔찍해.
   
   
08.
인어야. 네 심장을 꺼내간 인간은 내 고모가 아니었니. 고모와 같은 성질을 지니지 않았니. 인어의 고향으로 가는 지표를 고모에게 뺏기지 않았니. 인어야. 파도를 혼절시켜주어라. 가냘픈 비단 머리칼로 나를 익사시켜주어라. 가는 길에 심장을 모래사장 알갱이만큼 발견한다면 네게 줄게. 변덕쟁이 인간의 자궁을 빌려 형용됐지만 난 아버지의 아들도 아니다. 자격은 충족되지 않니.
   
   
09.
스모그 잉크를 깃털 색감에 찍어 한글을 쓴다. 제2 외국어는 인어가 못 알아듣는다. 배려를 목주름에 익혀. 살아생전 아버지가 남기신 말씀을 인어에게 대어본다. 인어는 늙지 않았다.
   
   
10.
큰 비닐에는 인어가 들어가 주지 않았었다. 제발 들어가. 삐죽. 여기를 누르면 저기가 튀어나왔다. 날 안고 가주라는 듯. 죽어서도 무리한 당부를 하는 인어다. 생선 기름이 물바다를 이룬 장판에 두 발목을 짚고 인어의 머리맡을 안았다. 수증기를 빨아들인 건지 숨구멍이 무겁다. 깔창이 두 군데로 갈라지기 직전인 운동화를 신고 대낮 거리를 들쑤시고 다녔다. 파마를 하고 미용실에서 나오시는 아주머니들이 인어를 훔쳐보았다. ‘이건 장식품이에요’ 라고 둘러대지 않았다. 인어와 나, 조만간 물거품이 될 것이다. 이상야릇한 첫사랑의 세계관을 벗어나.
   
   
11.
인어를 죽인, 인어가 사랑한, 인어의 심장이 바다 어디에 있다. 준비가 됐다고 착각하는 마음가짐으로 일찌감치 모래 바닥에 인어를 내렸다. 인어가 내린 곳에는 오래된 연인이 새긴 하트가 꽃답게 뭉개져가고 있었다.
   
   
12.
저게 네 심장이면 좋았겠다.
   
   
13.
새벽이 되어간다. 대낮이 새벽이 되어간다. 감성을 열거한 쪽지를 인어의 목주름에 익혔다. 너는 사실 아주 비쌀 거다. 나는 물오른 인어의 가슴에 엎드려 아주머니들에게 우리가 동화되는 짧은 동안을 기다렸다. 써늘한 피부가 고열로 녹아졌다. 빨리, 빨리 물거품이 돼야 했다. 화산 폭발로 육지가 된 산 머리채에 해가 꾸물꾸물 후진한다. 새벽이 되어간다. 새벽이 됐다. 인어야, 가자. 발바닥을 모래에 대고 민다. 인어가 내 중력에 의해 사모하는 바다로 빠져들었다. 정신없이 파도에 쏠려 팔에 피멍 무늬가 나는 두 마리. 인어와 나.
   
   
14.
새벽 네 시. 바닷바람이 춥다. 인어를 안고 바다에 떠내려가니 냉기가 더욱 셌다. 나는 인어에게 인어공주 이야기를 돌아가신 어머니의 어조로 말했다. 인어공주는 목소리를 바쳐 왕자를 사랑했는데 끝은 물거품이었단다.
 
   
15.
인어야. 파도를 혼절시켜주어라. 가냘픈 비단 머리칼로 익사시켜주어라. 인어는 웃었다. 날 고향으로 데려다준다면서요. 그랬지. 그래. 우리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요. 아버지의 아들도 아닌 인어의 아들, 인어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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